posted by 로단테/카를류안 2014. 6. 8. 04:14




쿠로코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아오미네였다.


종종 답답할 때면 학교 옥상에 올라가 시간을 때우곤 했던 아오미네는 쿠로코가 실종된 이후로 이전보다 더 자주 옥상을 찾았다. 쿠로코를 발견한 것은 평소와 다를바 없었던 어느날의 평범한 오후. 청소당번을 땡땡이치고 잠깐 옥상이나 갔다 갈까, 하고 올라왔을 뿐이었다. 오늘따라 구름이 예쁜데. 바람도 제법 시원하고.

그림자가 진 계단실에 기대 그런생각을 하고있던 아오미네의 눈에 뭔가- 거슬리는것이 들어왔다.


그것은 뭐랄까, 그래, 발이었다. 누군가의 발, 실내화를 신고있는. 그러나... 달랐다. 계단실 위쪽, 물탱크 등이 있는 공간에 걸터앉은 것 같이 아래쪽으로 내리고 있는 그 발이, 다리가, ....투명하게.. 희끗하게 회칠이 된 벽을 그대로 투영해 보이고 있다. 그것을 알아챈 순간 아오미네는 눈이 번쩍 떠지며 등줄기로 소름이 내달리는 것을 느꼈다. 귀, 귀, 귀신! 아니 무슨 대낮부터 귀신이야! 스스로에게 태클을 걸며 침을 꿀꺽 삼킨 그는 더 이상 위쪽을 보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슬금슬금 그것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뿔싸.. 내려가는 입구로 가려면 저 알 수 없는 귀신의 앞을 지나가야만 했다.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벽을 타고 걸어가야 하는걸까, 아니면 저 귀신이 날 발견하기 전에 바닥에 딱 붙어 기어서 지나가야 하는걸까. 멀리 돌아가면 틀림없이 눈에 띌 텐데, 하지만 귀신이 날 보고 쫓아오면 거리가 좀 있는 편이.. 아냐 아래로 기어가는게 나을까, 눈에 좀 덜 띄겠지만 저게 눈치라도 채면 너무 가까운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휘몰아치고 아오미네는 그래도 내가 달리기는 좀 되니까 조금이라도 더 멀게 거리를 두고 도망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최대한 천천히, 느릿느릿, 옥상 벽에 딱 붙어 귀신으로 추정되는 뭔가와 가장 먼 루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뭔가가 지켜본다거나 따라오는 느낌은 없었기 때문에 직선거리로 가장 먼 옥상 끝에 도착할 때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가 고비였다. 여기서 방향을 틀면 싫어도 저것이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게 될 것이고, 혹여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아오미네는 자신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다지 위협적인 느낌은 안 드는데 슬쩍 봐볼까..? 이런 경험도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그러다 불쑥 고개를 든 소년 특유의 호기심, 붕붕 고개를 저어가며 스스로의 호기심을 억눌러 보려 했지만.. 멀찍이 떨어져 있다는데서 오는 안도감일까, 자신감일까. 결국 자기 자신의 호기심에 진 아오미네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바닥부터- 발끝부터 그것의 모습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거리가 상당했던 덕분에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것'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한 눈에 다 들어찼다.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다는 감상. 어디하나 잘못된 구석도 없어보이고, 피가 철철 흐르거나 무서운 외형을 하고있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저 흐리고 흐릴 뿐, 등 뒤에는.. 설마 저거 날개야?

외형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에 잔뜩 고개를 들어버린 소년의 호기심은, 그 등뒤에 달린 날개를 보는 순간 두려움이고 경계심이고 뭐고 죄다 날려버리고 말았다. 가까이서 보고싶어! 눈을 반짝거리며 두근두근, 날개를 달고 있는걸 보면 천사인가, 귀신은 아닐테니까 딱히 해를 끼치진 않겠지 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을 가지고 아오미네는 좁은 걸음으로 슬금슬금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반짝이던 그의 눈 가득 놀라움과 경악이 들어찬 것은 그 거리가 절반도 채 좁혀지기 전이었다.







테츠!!!


소년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

좁혀진 거리에 알아볼 수 있는 그것의 모습은 테츠, 실종되었던 쿠로코 테츠야- 자신의 친구를 닮아있었다.


한달음에 그 앞으로 달려갔다. 힘이 쭉 빠진 모양으로 옥상위에 걸터앉아서 멍하니 앞을 보고있는 쿠로코는 아오미네가 부르는 소리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들어차있지 않은 듯한 멍한 눈동자를 천천히 굴려 아래를 슬쩍 내려다 보았을 뿐.


테츠, 테츠 너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거야!! 돌아왔으면 왔다고 말을 하던가 이런데서 뭐하는건데!


화가 난건지 놀라운건지 반가운건지, 엉망으로 뒤죽박죽이 된 감정에 큰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는 쿠로코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의 발과 발목과 종아리가 투명한 것 때문에 더 이상의 뒷말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떨리는 눈으로, 떨리는 손으로 그런 쿠로코의 몸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댄다.


....만져지지 않아. 아 아니, 만져지나...? 뭐야, 뭐야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창백하게 질린 아오미네는 순간, 뭔가가 푸드득거리며 움직인다는 것을 눈치채고 좀 더 위쪽, 쿠로코의 뒤로 시선을 향했다.


...날개.....


반쯤 펴진채 종종 그 끝을 파르르 떠는 흰 날개가. 설마. 아냐 하지만, .... 아냐, 만져지잖아. 안 만져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만질 수 있어. 유령이 아니야. 날개.. 날개는..


그때 또다시 쿠로코의 날개가 푸드득, 소리를 내며 한차례 크게 움직였다. 제법 큰 그 움직임에 순간 위협을 느낀 아오미네가 흠칫 뒤로 반걸음 물러섰고, 그리고 뒤이어 그는 저 날개가 진짜 움직이는 것이고 날개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날개가 달린 것들은 날아다녀. 기껏 발견했는데,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놀라서 날아가버리면, 그러면 어떡하지..? -물론 지금 저 표정을 보아하니 절대로 놀라서 날아갈 것 같진 않지만 아무튼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떠오르자 그는 한층 더 헬쓱해졌다.



















posted by 로단테/카를류안 2014. 6. 8. 03:19




주말과 휴일이 연달아 지나가고, 다시 등교가 시작되었을 때도 다들 의아하게는 생각하고 있었으나 아카시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카시는 처음 출석체크를 할 때 쿠로코의 이름을 두번 정도 연달아 더 부르는 것을 끝으로 더는 그를 찾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걸까, 몸이 좋지 않아보이던게 생각보다 많이 나빴던걸까,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내일은 나오겠지, 그래도 내일은, 그래도 내일은.


그 래도라고 생각했던 내일이 네 번 지나갈 동안 쿠로코는 단 한번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첫날은 아무도 모르고- 심지어 같은 반이었던 무라사키바라조차 별로 인식하지 않아 모르고 있었던 그의 결석. 그러나 둘째날은 어제 보이지 않았던 그가 걱정되어 신경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진짜로 결석했다는 것을 알아챘고, 셋째날은 담임도 쿠로코가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넷째날 아침 담임에게서 쿠로코가 지난 금요일 저녁부터 실종상태라는 것을 전해들었다. 탈선이라는 것 자체를 모르는 것 같은 단정한 소년, 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출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실종, 실종이었다.


놀라고 당황한 무라사키바라가 쉬는시간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아카시의 반을 찾아가 그에게 매달렸다. 아카칭, 아카칭, 쿠로칭이 실종이래- 금요일부터 집에 안 들어왔대.

마침 아카시를 찾아왔던 미도리마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눈을 크게 떴고, 아카시도 드물게 놀라는 표정을 보였다.


이 날 오후 연습이 시작되기 전에 1군의 모두가 쿠로코의 실종을 알게 됐다. 조금 빈정거리듯 시합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고 삐져서 가출한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모두의 무시무시한 눈초리에,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에 취소를 연발하며 조용히 찌그러졌다.




쿠로코의 실종신고가 경찰에 들어갔다. 아카시가 어떻게 손을 쓴건진 모르겠지만 레귤러 팀원들은 부실에서 그가 가져온 비디오를 통해 금요일 밤 쿠로코의 행적을 씨씨티비 화면으로 볼 수 있었다. 연습이 모두 끝나기 전 혼자서 일찍 돌아가는 쿠로코는 확실히 그들의 앞에서보다 상태가 더 나빠보였다. 조금 걷다 비틀거리고, 다시 조금 걷다 벽이나 전봇대를 짚거나 주저앉아서 숨을 고르기도 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괜찮냐는듯 말을 거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그런 그들에게 정중히 고개숙여 감사하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그리고-


집 으로 돌아가는 길은 씨씨티비의 범위에 들어있지 않은 구간이 제법 되었는데 쿠로코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그의 집에서 두번째로 가까운 씨씨티비 속이었고, 그 안에서 그는 거의 걸음을 옮기지 못할 정도로 크게 비틀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넘어져버릴듯한 위태로운 모습에 지켜보고 있던 부원들의 손에 땀이 찬다. 그리고


그리고 거기서 끝이었다.

그 씨씨티비의 범위를 넘어간 쿠로코는 다음 씨씨티비에 잡히지 않았다. 몇번을 돌려봐도 거기서 끝이었다. 불안하게 휘청거리며 간신히 걸음을 옮기던 그 모습, 그게 끝. 거기서 다른곳으로 빠질 수 있는 다른 모든 루트에 다른 씨씨티비가 달려있었지만 그 어디에서도 쿠로코의 모습을 더 이상은 찾을 수 없었다- 고 아카시가 입을 열었다.


쿠로코는 실종됐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어. 더 이상의 단서는 없고, 그의 가족들과 경찰이 전력을 다해 찾고있지만 그날 그가 들고있던 가방만이 근처에서 발견되었을 뿐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불안하고 걱정되지만 무슨 소식이라도 들려올 때까지 우리는 원래대로의 일상을 보내야한다.




처음 며칠은 괴로웠다. 쿠로코가 실종됐다는 것이, 항상 그들과 눈을 맞춰주던 자그마한 소년이 곁에 없다는 빈자리가 너무 커서. 잘 보이지도 않았던 이의 빈자리가 이렇게도 큰 것이었나, 소년들은 빈자리의 무게를 실감했다. 며칠이 더 지나고, 다시 며칠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날때쯤에는 다들 쿠로코가 없다는것에 익숙해져갔다. 다만 종종 아오미네가 뒤돌아보며 허공에 쥔 주먹을 들어올리곤 이내 머쓱해져 그 손을 내리고 돌아섰다. 키세는 때때로 멍하니 쿠로코가 연습하곤 하던 골대 앞에 멈춰있곤 했다. 무라사키바라는 수업시간에 종종 그의 자리를 돌아보고 쿠로코와 나눠먹던 과자를 한 줌씩 남기게 됐고, 미도리마는 슛 연습을 하다가 가끔 바깥바람이라도 좀 세게 불라치면 슛을 실패했다. 아카시는 그답지 않게 멍한 눈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그것을 알아챈것은 미도리마가 유일했다.







posted by 로단테/카를류안 2014. 6. 8. 01:47



쿠로코가 실종됐다.



처음에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평소에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낮은 존재감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허다했고, 주말과 휴일이 연달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토요일은 연습시합이 잡혀있었지만 이날 쿠로코는 참여하지 않기로 되어있었다. 유난히 상태가 좋아보이지 않았던 며칠간 그를 지켜보던 아카시가 휴식을 취할것을 강력하게 권고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쿠로코는 크게 반발했지만 조금 열을 내는 순간 휘청거리며 쓰러질 뻔 했기 때문에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출전불가 도장을 찍어야 했다. 시합을 뛰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관전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날 출전 선수들과 함께 출발하는 것으로 말을 맞췄다.


그러나 당일 아침, 쿠로코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기다렸지만 그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고, 심지어 전화도 받지 않았다. 앓아누워 버린 걸까, 하는 추측과 함께 그들은 쿠로코를 빼고 출발했고, 시합에서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