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로단테/카를류안 2014. 3. 29. 03:20



애쉬.’

 

귓가에 내려앉는 목소리가 간지럽다. 아주 부드럽지만,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묘하게 가라앉은 그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귓가를 긁어온다.

 

천천히 뒤에서 안아오는 가느다란 팔을 내칠까 잠시 고민하지만, 자신은 지금 그런 고민이 무색할 만큼 크게 지쳐있었다. 마음이, 지쳤다.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어. 완전히 벼랑 끝에 내몰려있다.

평소와 다르게 조금 차갑게 느껴지는 손이 느리게 옷 안쪽을 파고들어온다. 그것은 그의 체온이 낮은 까닭일까, 아니면 내가 뜨거운 까닭일까. 열이 오르는 건가? 지친 마음의 과부하가 몸에 영향을 끼치는 걸까, 아니면 닿아오는 체온의 주인이 긴장하여 푸르게 질린 걸까. 마치 소설에나 나올 법한 고민을 속으로 늘어놓다가 이내 그것도 놓아버렸다. 우습지, 이런 서술이 무에 도움이 된다고 나는 되도 않는 속을 늘어놓고 있을까.  

 

제제를 하지 않으니 어루만지는 손은 점점 더 대담해진다. 부드럽게 피부를 훑는 손길은 별다른 성적 의도를 품고 있지 않았지만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저 어린아이가 좋아하는 담요를 쓰다듬는 듯한 손길일 뿐인데, 어째서. -그런 손길에도 애써 흥분해버릴 만큼 나는 지금, 위로가 필요한 건가.

 

, ,  

 

어깨와 목덜미에 내려앉는 입술이 부드럽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엷은 꽃잎 색을 띄고 있으리란 것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촉촉하고 말캉말캉하다. 마치 개나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듯 등 뒤에 고개를 묻고 천천히 부비는 것을 느끼며 멍하니- 이 접촉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을 느낀다. 한 번, 두 번 닿아올 때마다 내 온도에 물들어 미지근해지는 서늘한 피부가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좀 더.’

 

……-?’

 

…….’

 

조금 당황한 듯 되묻는 목소리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내 배와 가슴만을 천천히 쓰다듬고 있던 가는 손가락을 잡아서 좀 더 아래로, 당겨 내렸을 뿐. 놀란 듯 굳어 움직이지 않던 손의 주인이 이내, 느리게 버클을 잡아당긴다. 한 손 만으로 섬세하게 버튼을 풀어내고 지퍼를 잡아 지익-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좀 더 뒤로 편안히 몸을 기댔다. 지금 이 순간 내 몸을 만지는 것이 그라서 다행이라고 문득 생각한다. 이렇게 성적인 접촉은 처음이지만 그와의 스킨십은 질척하게 끈적이는 것 없이 담백하기 그지없었으니까.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닿아있는 것 뿐, 그 외에는 내 기분을 살펴 좀 더 붙어있던가, 아니면 바로 떨어지던가, 모든 것이 내게 맞춰져 있다.  

 

너는 단지 나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충분한걸까.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어떻게? ? -지금의 나는 특히나 더 그런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를 이토록 괴롭게 몰아가는 이 감정도 사랑이라는데, 이렇게 질척하고 끈적거리는 덩어리를 품고도 어떻게 이렇게 가볍고 부드럽게 어루만질 수 있는 걸까. 내 양손은 온통 끈적이는 검은 덩어리 투성이라 차마 아무도 아닌 타인조차도 만질 엄두가 나지 않는데, 어떻게 너는.

 

…….’

 

서늘한 체온이 장골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리듯 부드럽게 내려가 감춰져있어 다른 곳보다 체온이 높은 곳에 닿았다. 그 서늘한 감각에 조금 놀라 목덜미를 움츠리니 미안하다는 듯 부드럽게 입술을 콕콕 내려찍는다. 가볍게 훑어 쥐고, 그 끝을 손끝으로 가볍게 비비고, 쉽게 부서지는 것을 만지듯 조심스럽고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굉장히 조심스럽고도 가벼운 접촉임에도 내 몸은 차근차근 착실하게 흥분의 단계를 밟아갔다. 조금이지만 호흡이 간지러워졌고, 귀 끝으로 피가 몰리는 것이 느껴진다. 슬쩍 벌리고 있던 다리가 자꾸 움찔대며 닫히려고 하자 배 위에서 머물고 있던 한 쪽 손이 허벅지 위로 올라와 그러지 말라는 듯, 조금 강하게 잡아 누른다. 한 손 뿐이었고 악력이 세다고는 해도 날 고려해서 정말로 아프게 그러쥔 것은 아니었지만 순순히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게 힘을 줬다. 마치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잎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손길일 뿐인데도 애써 고정하지 않으면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애쉬.’

 

…….’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신음을 내뱉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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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후우, 후욱, 지 진정하자, ……정은 무슨 단테!! , , , , 이게, 이게 뭐야!”

 

……?”

 

너 지금 이게 뭔지는 알고 읽고 있었던 거야?!”

 

…….”

 

이거, 누가 너한테 줬어. 설마 네가 뽑은 건 아닐 테고. 누구야.”

 

…….”

 

여기서 묵비권 행사하지 말고!! 누구야, 아니지 누구긴 누구겠어, 댄이지?! 그렇지?!”

 

…….”

 

아악! 진짜 그놈은 대체 이런 걸 어디서 뽑아오는 거야! , 내가 기가 막혀서, 아니 대체 왜 너랑 나를 엮어서 커플을 만들어 놓는 거냐고! 이 여자들이 진짜!”

 

……남자 팬도.”

 

, ?! 남자 팬이 너랑 나랑 엮어서 커플놀이하는 클럽에 가입해있다고?? , 이 인간들이 미쳤나……!”

 

…….”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져서 손에 쥔 종이를 찢어버릴 듯 구겨 쥐며 펄펄 뛰는 애쉬의 앞에서, 단테는 사실 그 소설 남자 팬이 쓴 거라고 했는데- 란 말을 속으로 삼켰다.  

 

애쉬와의 관계가 그럭저럭 친구라고 부를 수 있게 된지도 어느새 몇 년. 이제 슬슬 이런 것에도 익숙해질 때가 되지 않은 걸까? 자신들을 상대로 이런 소설을 써내려간다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하고, 또 나름 흥미진진하고…… 난 꽤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러나 이 생각도, 그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멀뚱멀뚱, 뭔가 중얼대며 펄펄 뛰는 애쉬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애쉬는 그들 사이를 Just friend, 그냥 친구사이일 뿐이라고 몇 번이나 못 박아 이야기 했지만 사실 단테로써는 그냥 친구 사이이든, 아니면 다른 특별한 사이이든 별로 상관이 없다- 사실 아무 생각도 없는 상태였다. 그는 그저 애쉬 밀러라는 사람이 자신의 곁에 머물러주는 것만으로도 다른 모든 부족한 부분들이 충족되는 것만 같은 충만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나 애쉬는 다른 듯, 언제나 친구 이상의 감정이 가미된 무언가를 발견만 했다 하면- 저런 식으로 예민하게 굴곤 했다. 가볍게 우스갯소리로 사귀는 거 아니냐는, 연인이 아니냐는 말도 듣다보면 그게 진짜가 돼버리니까. 이리저리 휩쓸려 손 쓸 틈도 없이 자신과 강제로 엮여버리는 상황이 생길 것이, 싫은 거다, 그는.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진짜로 그가 자신에게 연애감정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다 하더라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겠지. 강제로 고정되는 것이 싫다고 말하면서 이미 단단히 굳어버린 이 관계는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조금…… 미묘하다. 그다지 연인으로 엮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저- 그렇게 된다면 자신과 좀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 같은 것은 조금 있었으니까. 그래도 친구라는 관계는 고정되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저것도 결국 찢어버리는 건가? 야한 부분도 조금 있지만 대체적으로 저 글은 굉장히 탄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자신과 애쉬 두 사람의 성격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꽤나 잘 써내려간 훌륭한 작품이었다. 스스로 읽으면서도 아- 이럴 때 이런 상황에서 애쉬라면 그렇게 할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아주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졌었으니까. 저걸 출력해서 책처럼 엮어 가져다준 작은 형이 하는 말로는, 자신과 애쉬 커플을 추종하는 팬들 틈에서도 굉장히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손에 꼽히는 명작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게다가 이건 말도 안 돼, 왜 내가 아래야? , 내가 너한테 ㄷ……… , ㅆ…… 후우, 후우, 아우…….”

 

씨근덕거리다가 머리카락을 마구 비비는 애쉬의 중얼거림처럼 저 소설은 대부분의 소설에서 내가 아래쪽인 것에 반해, 애쉬 쪽이 아래쪽인…… 흔치 않은 소설이라고 했지.

내 손에 소설을 꼭 쥐어주며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작은 형이 가르쳐 줬었다.

 

내 앞에서 정신 사납게 왔다 갔다 하던 애쉬가 결국 구겨진 책을 쥐고 방을 뛰쳐나간다. , 아직 덜 읽었는데…… 조금 아쉬워서 시무룩했지만 그래도 곧 기운을 차렸다. 아마 애쉬와 한바탕 실컷 놀고 나서 작은 형이 다시 한 부 뽑아다 줄테니까. 소설 속에서 자신은 어떤 식으로 애쉬를 만지고 흥분하게 만들까? 그리고 그 뒤에 둘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변해갈까? 그 작가의 시선 속에서 우리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얼른 다음 내용을 읽고 싶은데- 작은 형한테 찾아가볼까, 둘의 싸움이 심해지면 말리기도 할 겸.  

 

툭툭 앉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걸음을 옮기는 단테의 얼굴에는 평소보다 더 즐거운 듯한 미소가 방긋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