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3
쿠로코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아오미네였다.
종종 답답할 때면 학교 옥상에 올라가 시간을 때우곤 했던 아오미네는 쿠로코가 실종된 이후로 이전보다 더 자주 옥상을 찾았다. 쿠로코를 발견한 것은 평소와 다를바 없었던 어느날의 평범한 오후. 청소당번을 땡땡이치고 잠깐 옥상이나 갔다 갈까, 하고 올라왔을 뿐이었다. 오늘따라 구름이 예쁜데. 바람도 제법 시원하고.
그림자가 진 계단실에 기대 그런생각을 하고있던 아오미네의 눈에 뭔가- 거슬리는것이 들어왔다.
그것은 뭐랄까, 그래, 발이었다. 누군가의 발, 실내화를 신고있는. 그러나... 달랐다. 계단실 위쪽, 물탱크 등이 있는 공간에 걸터앉은 것 같이 아래쪽으로 내리고 있는 그 발이, 다리가, ....투명하게.. 희끗하게 회칠이 된 벽을 그대로 투영해 보이고 있다. 그것을 알아챈 순간 아오미네는 눈이 번쩍 떠지며 등줄기로 소름이 내달리는 것을 느꼈다. 귀, 귀, 귀신! 아니 무슨 대낮부터 귀신이야! 스스로에게 태클을 걸며 침을 꿀꺽 삼킨 그는 더 이상 위쪽을 보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슬금슬금 그것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뿔싸.. 내려가는 입구로 가려면 저 알 수 없는 귀신의 앞을 지나가야만 했다.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벽을 타고 걸어가야 하는걸까, 아니면 저 귀신이 날 발견하기 전에 바닥에 딱 붙어 기어서 지나가야 하는걸까. 멀리 돌아가면 틀림없이 눈에 띌 텐데, 하지만 귀신이 날 보고 쫓아오면 거리가 좀 있는 편이.. 아냐 아래로 기어가는게 나을까, 눈에 좀 덜 띄겠지만 저게 눈치라도 채면 너무 가까운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휘몰아치고 아오미네는 그래도 내가 달리기는 좀 되니까 조금이라도 더 멀게 거리를 두고 도망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최대한 천천히, 느릿느릿, 옥상 벽에 딱 붙어 귀신으로 추정되는 뭔가와 가장 먼 루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뭔가가 지켜본다거나 따라오는 느낌은 없었기 때문에 직선거리로 가장 먼 옥상 끝에 도착할 때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가 고비였다. 여기서 방향을 틀면 싫어도 저것이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게 될 것이고, 혹여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아오미네는 자신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다지 위협적인 느낌은 안 드는데 슬쩍 봐볼까..? 이런 경험도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그러다 불쑥 고개를 든 소년 특유의 호기심, 붕붕 고개를 저어가며 스스로의 호기심을 억눌러 보려 했지만.. 멀찍이 떨어져 있다는데서 오는 안도감일까, 자신감일까. 결국 자기 자신의 호기심에 진 아오미네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바닥부터- 발끝부터 그것의 모습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거리가 상당했던 덕분에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것'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한 눈에 다 들어찼다.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다지 위협적이진 않다는 감상. 어디하나 잘못된 구석도 없어보이고, 피가 철철 흐르거나 무서운 외형을 하고있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저 흐리고 흐릴 뿐, 등 뒤에는.. 설마 저거 날개야?
외형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에 잔뜩 고개를 들어버린 소년의 호기심은, 그 등뒤에 달린 날개를 보는 순간 두려움이고 경계심이고 뭐고 죄다 날려버리고 말았다. 가까이서 보고싶어! 눈을 반짝거리며 두근두근, 날개를 달고 있는걸 보면 천사인가, 귀신은 아닐테니까 딱히 해를 끼치진 않겠지 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을 가지고 아오미네는 좁은 걸음으로 슬금슬금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반짝이던 그의 눈 가득 놀라움과 경악이 들어찬 것은 그 거리가 절반도 채 좁혀지기 전이었다.
테츠!!!
소년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
좁혀진 거리에 알아볼 수 있는 그것의 모습은 테츠, 실종되었던 쿠로코 테츠야- 자신의 친구를 닮아있었다.
한달음에 그 앞으로 달려갔다. 힘이 쭉 빠진 모양으로 옥상위에 걸터앉아서 멍하니 앞을 보고있는 쿠로코는 아오미네가 부르는 소리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들어차있지 않은 듯한 멍한 눈동자를 천천히 굴려 아래를 슬쩍 내려다 보았을 뿐.
테츠, 테츠 너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거야!! 돌아왔으면 왔다고 말을 하던가 이런데서 뭐하는건데!
화가 난건지 놀라운건지 반가운건지, 엉망으로 뒤죽박죽이 된 감정에 큰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저 멍하니 보고만 있는 쿠로코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의 발과 발목과 종아리가 투명한 것 때문에 더 이상의 뒷말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떨리는 눈으로, 떨리는 손으로 그런 쿠로코의 몸에 천천히 손을 가져다 댄다.
....만져지지 않아. 아 아니, 만져지나...? 뭐야, 뭐야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창백하게 질린 아오미네는 순간, 뭔가가 푸드득거리며 움직인다는 것을 눈치채고 좀 더 위쪽, 쿠로코의 뒤로 시선을 향했다.
...날개.....
반쯤 펴진채 종종 그 끝을 파르르 떠는 흰 날개가. 설마. 아냐 하지만, .... 아냐, 만져지잖아. 안 만져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만질 수 있어. 유령이 아니야. 날개.. 날개는..
그때 또다시 쿠로코의 날개가 푸드득, 소리를 내며 한차례 크게 움직였다. 제법 큰 그 움직임에 순간 위협을 느낀 아오미네가 흠칫 뒤로 반걸음 물러섰고, 그리고 뒤이어 그는 저 날개가 진짜 움직이는 것이고 날개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날개가 달린 것들은 날아다녀. 기껏 발견했는데,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놀라서 날아가버리면, 그러면 어떡하지..? -물론 지금 저 표정을 보아하니 절대로 놀라서 날아갈 것 같진 않지만 아무튼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떠오르자 그는 한층 더 헬쓱해졌다.